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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각사(麟角寺)

중경의 깔/일상여행_색깔

by 중경(中景) 2021. 3. 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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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각사(麟角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643년(선덕여왕 12)에 원효가 창건한 절로 고려시대에는〈삼국유사〉를 찬술한 일연이 만년에 이곳에 머물다가 입적했다.
조선 중기까지 법회가 자주 열리는 등 매우 번성했다고 하나 그뒤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극락전(極樂殿)

 

 

 

 

 

 

 

 

▲군위 인각사 삼층석탑(軍威 麟角寺 三層石搭)_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27호

이 탑은 전형적인 신라 탑 양식을 이어 받은 삼층석탑으로, 보기 드물게 상륜부가 남아있어 탑의 양식과 구조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상대기단의 갑석은 2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두툼한 부채꼴 모양의 받침에 얕은 사각형의 받침이
겹쳐져 있는 이중 탑신과 괴임대가 있다. 옥개석(屋蓋石)은 각층 탑신의 비율에 맞게 줄어들고 있다.
옥개석의 층급받침은 전체가 4단으로 되어 있으며, 모서리의 선은 많이 둥글려져 있다.

 

또한 이 탑의 제1탑신석이 제2탑신석 보다 높이의 비례가 크고, 옥개석의 옥개받침이 4단인 점 등을 볼 때
고려 전기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신라 말~ 고려 초 시기의 석탑 연구에 있어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 탑 및 비(軍威 麟角寺 普覺國師 塔 및 碑)_보물 제428호

고려 충렬왕 15년(1289)에 입적한 보각국사 일연의 사리탑과 그의 행적을 기록해 놓은 탑비이다.
탑은 자연석으로 된 바닥 위에 놓여 있으며, 받침돌, 몸돌, 지붕돌로 구성되어 있다. 팔각 받침돌은 3단으로 되어 있는데,
가운데 부분에는 동물조각이 흐릿하게 남아있다. 윗부분은 원형에 가까우며 단조롭고 소박한 연꽃이 새겨져 있다.

 

탑신은 팔각이며 정면에는 '보각국사 정조지탑(普覺國師 靜照之塔)'이라고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문 모양의 조각(彫刻)이 있으며 남은 6면에는 사천왕 입상(四天王 立像)과 연꽃 위에 서 있는 보살상(菩薩像)이
새겨져 있다. 지붕의 두꺼운 추녀 밑은 위로 살짝 들려있고, 낙수면은 급한 편이며 지붕 선 끝부분에 꽃 장식이 달려 있다.

지붕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큼직하게 올려져 있다.

 

 

 

 

 

 

 

▼碑는 국사의 제자인 법진(法珍)이 세웠으며, 비문은 당시의 문장가인 민지(閔漬)가 왕명을 받들어 지었고,
글씨는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集字)하여 만들었다. 비의 앞면에는 스승인 일연의 행적과 스승에 대한 추모의
정을 담았고, 뒷면에는 비를 세운 경위, 다비식 때의 영험, 제자들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군위 인각사 석불좌상(軍威 麟角寺 石佛坐像)_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39호

이 불상은 불신(佛身)과 배(舟) 모양의 광배가 하나의 돌에 조각되어 있다. 머리카락 모양은 굵은 소라 모양의 곱슬형태이며, 그 위로 상투
모양의 머리 묶음이 큼직하게 솟아 있다. 적당히 살이 오른 얼굴은 원만한 인상이며, 입술이 두툽하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흐르고 있다.
뺨을 솟아나게 하고 눈두덩을 불룩하게 하였으며 코와 입은 작게하고 귀는 길게 하였다.

 

또한 목에는 3개의 주름인 삼도(三道)를 표현 하였다. 손 모양은 오른손으로 촉지인(觸地印)을 취하고 있고, 왼손으로 선정인(禪定印)을
취하였으며, 손 위에는 조그마한 보주(寶珠)를 올려 놓았다. 이 불상은 조각수법으로 볼 때 10세기에서 11세기에 조성된 불상으로
이 시기의 불상 양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명부전(冥府殿)

 

 

 

 

 

 

 

 

 

 

 

 

 

 

 

 

▲국사전(國師殿)

 

 

 

 

 

 

 

 

 

 

 

 

 

 

 

 

 

 

 

 

 

 

 

 

▲군위 인각사지(軍威 麟角寺址)_사적 제374호

인각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세운 고찰로 전해지며 고려 시대에 크게 고쳐 지어졌다.
지금은 도로변에 인접한 평지 사찰이지만 원래는 깊은 산골에 있었다. 사찰의 남쪽에는 화산(華山), 북서쪽으로는 옥녀봉의 가파른
지맥이 드리워져 있으며, 사찰 앞으로 위천이 흐르고 그 북쪽에는 학소대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화산의 화려하면서 기품 있는 모습은
상상의 동물인 기린을 닮았으며, 절이 앉은 자리가 기린의 뿔에 해당하는 지점이라 하여 인각사(麟角寺)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인각사는 삼국유사(三國遺事)을 저술한 보각국사 일연의 하안소로 만년에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완성한 곳이기도 하다.
이 곳에는 일연의 보각국사비와 부도가 남아있으며, 경내의 당우로는 명부전, 산령각, 국사전이 있다.

 

그 외에 고려 시대의 삼층석탑과 석불 등이 있으며, 절 동쪽 미륵당에는 훼손은 심하지만 정교한 불상이 모셔져 있다. 1991년부터 발굴
조사를 실시한 결과 고려시대뿐만 아니라 통일신라시대의 유구가 확인되었고, 금동병향로를 비롯한 소중한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다.

 

 

 

 

 

 

 

▲인각사 발굴 조사 출토 부재

이곳에 전시된 석재는 인각사(사적 제374호)를 정비하려고 발굴하는 과정에서 수습된 것으로, 인각사 창건(642년)부터 고려시대까지
인각사에 사용된 석재 중 중요 부재를 모아놓은 것이다. 1992년부터 2009년까지 실시한 발굴조사 결과 현 인각사 동쪽에서 통일
신라시대 중심 사역의 일부가 확인되었으며, 고려시대 후기부터 중심사역이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인각사가 "삼국유사"를 저술한 보각국사 일연선사의 하안소(1284년~1289년)로 지정되면서 통일신라시대에 정교하게
다듬어진 석재를 활용하여 건물을 증축하거나 개축한 것으로 보이며, 일부 고려시대에 제작된 석재도 확인된다.

 

전시된 부재는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제작된 연화문 석등 대석(臺石)을 비롯안 심초석(心礎石), 방형초석(方形礎石), 원형초석
(圓形礎石), 기단석(基壇石)등이다. 이 중 2005년 극락전 해체과정에서 확인된 심초석은 통일신라시대 인각사에 목탑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실증적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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